허찬미라는 승부수: 트로트의 소멸을 막을 마지막 쇄빙선

지난 1월 22일 방영된 TV조선 <미스트롯4> 5화에서 허찬미와 이소나의 1:1 데스매치 무대가 공개된 이후, 트롯판은 연일 뜨겁다. 누군가는 “퍼포먼스에 치중된 가짜 트롯”이라 비난하고, 누군가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멋진 무대”라며 열광한다. 경연 무대에 대해 이처럼 극단적으로 갈린 반응은 드물다. 하지만 그만큼 현재 트로트 장르가 어느 경계에 서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정통 트로트의 계승(?)을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금 가장 많은 논쟁을 견디고 있는 인물, 허찬미가 있다.

'활활 타오른 불씨'는 꺼져가고 있다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이 쏘아 올린 기적 같은 부활은 2026년 현재, 냉정하게 말해 '임계점'에 도달했다. 코로나19 시국을 위로했던 트로트 열풍은 끝났고, 대중은 지쳤다. 특히 2534 세대에게 트로트는 다시 '촌스러운 장르' 혹은 '그들만의 리그'로 회귀하고 있다. 트로트 팬덤은 양극화 되었고, 젊은 층은 오디션 출신 가수들의 팬덤 문화에 적대감마저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침체가 아닌, 트로트의 '시한부 선고'다. 현재의 주 소비층인 60대 이상이 구매력을 잃는 20-30년 뒤, 트로트를 소비할 세대는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트로트는 다시 과거처럼 대중문화의 변방으로, 혹은 박물관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지금 대중이 부르짖는 '정통성 훼손' 논란은 트로트의 역사를 되짚어볼 때 꽤나 아이러니하다. 애초에 트로트(Trot)는 무엇인가? 1920년대 서양의 춤곡 리듬인 '폭스트로트(Foxtrot)'에 일본의 엔카, 그리고 한국의 민요적 정서가 뒤섞여 탄생한 장르다. 즉, 트로트는 태생부터가 '신문물'이었으며, 당대 가장 세련된 '하이브리드 팝'이었다.

그런데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이 장르에서 특정 음악적 스타일만을 '정통'이라 규정하고, 새로운 시도를 '파괴'로 매도하는 것은 온당한가? 본래 가장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했던 장르를 '가만히 서서 부르는 노래'로 박제하려는 시도야말로 트로트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행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태생적 본능인 '변화'를 되찾는 일이다.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미스트롯4> 제작발표회에서 진성 마스터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고 말하며, 김연자 마스터는 "지금 K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강세인 만큼 그에 걸맞는 분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이토록 변화를 갈구하는 이유는 수십 년간 현장에서 느낀 '필드의 공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자가 2020년대까지 전 연령층에게 인식되는 가수가 된 이유도 정통 트로트 때문이 아니라 EDM 기반의 <아모르파티> 덕분이었다. 장윤정이 무명 시절을 지나 트로트 대표 주자가 된 것도 세미 트로트라는 변화 실험을 택했기에 가능했다.

가만히 서서, 꺾기를 잘하며, 구수하게 부르는 '정통 트로트'.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6070 시청자를 만족시킬 뿐, 2030 세대 아니 3040 세대도 유입시킬 수는 없다. 제작진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기존 시청자 관리가 아니라 장르의 존속이다. 진성 마스터의 “퍼포먼스 50 노래 50” 발언은 심사 기준이라기보다 생존 전략에 가깝다.

기성세대의 반발은,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징후다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이와 유사한 저항이 있었다. 지금으로선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는 랩 기반 음악, 사회 비판적 메시지는 당시 언론과 기성세대에게 ‘위험’과 ‘파괴’로 간주되었다. 머리색깔, 의상, 장르, 가사까지 모든 것이 공격 대상이었고, 서태지는 유독 집중적인 포화를 맞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는 기존의 틀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서태지는 음반사 카르텔의 구조를 깨며 새로운 팬덤과 시장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언론과 방송은 더욱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방송 금지, 기사 왜곡, 괘씸죄성 보도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다음 세대를 움직였고, 서태지는 결국 한국 대중음악사를 바꾼 아이콘이 되었다.

이처럼 변화의 시기엔 반드시 저항이 따라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항이 강하다는 건 그 변화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허찬미는 현재 <미스트롯4>에서 기성 세대 시청자층에게 분명한 반감을 사고 있다. 퍼포먼스, 무대 연출 모두가 ‘트로트의 전통성(?)을 흔드는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게시판은 시끄럽고, 평가 기준에 대한 불만도 쏟아진다. 하지만 이것은 허찬미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판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서태지에게 그랬듯, 지금 허찬미는 기존 질서에게는 ‘불편한 존재’이며, 따라서 기성 시청자층의 비난을 감수하고 있다.

왜 하필 '허찬미'인가?

그간 많은 아이돌 출신이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그리고 각종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해 왔다. 하지만 대다수는 트로트 붐에 편승해 인지도를 얻고 다시 발라드나 뮤지컬로 돌아가려 했다. 그들에게 트로트는 '잠깐 들르는 정거장'이었다. 하지만 허찬미는 다르다. 2006년 아이돌 연습생을 시작으로 산전수전을 겪은 그녀는 2021년 <내일은 미스트롯2> 이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트로트 판을 떠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아이돌 시스템이 만들어낸 최상의 퍼포먼스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트로트에 진정성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다.

허찬미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으로 유명 걸그룹 데뷔조에 거론될 만큼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고, 코어콘텐츠미디어(현 포켓돌스튜디오)라는 중형 기획사에서 '남녀공학'과 '파이브돌스'의 메인보컬로 활동했다. 여기에 <프로듀스 101>을 통해 전 국민적인 인지도(그것이 악마의 편집이었을지라도)와 화제성까지 검증받았다. 즉, 그녀는 단순한 '아이돌 출신'이 아니라, K-POP 시스템에서 키워진 '고스펙 엘리트 자원'이다.

무엇보다 허찬미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과거의 익숙함'이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 그 어떤 실력파 신인 트로트 가수를 데려와도 그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프듀에 나왔던 그 허찬미?", "남녀공학 메인보컬?"이라는 반응은 그들을 멈칫하게 만든다. 완전히 낯선 타인보다는, 내 기억 속에 이름이 있는 '익숙한 인물'이 트로트를 부를 때 비로소 2534 세대는 호기심을 갖는다. 허찬미는 이 강력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트로트라는 장르를 K-POP 문법으로 리모델링하고, 익숙함을 통해 젊은 층의 문을 여는 실질적 통로가 된다.

쇄빙선은 부서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장르가 지속되기 위해선 어느 시점에서든 기존의 안정을 흔드는 존재가 필요하다. 불편함은 불가피하고, 저항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그 충돌이 크다는 것은 변화의 힘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 허찬미는 기성 트로트 시청자층의 비난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실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를 위해 ‘판을 깨는 역할’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얼어붙은 물 위에서 방향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금을 내는 존재.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이가 지금의 허찬미다.

쇄빙선은 부서지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위를 따라올 수많은 이들을 위해, 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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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en